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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년 역사 < 1945 ~ 1959

국립서울맹아학교 시대

 1945년 8일 15일 벅찬 조국 해방의 감격도 가시기 전에 민족적으로 남북한 분단의 잔을 마셔야 하였고 미군정치하, 대한민국정부 수립, 6.25 사변과 9.28수복, 1.4후퇴 등등 파란만장의 변동과 시련을 겪게 되었다. 정치적, 경제적으로 사회가 몹시 혼란돼 그 영향이 본교에도 미쳐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지 않을 수 없었다.  동년 10익 1일 제생원 한국인 교사였던 윤백원, 전태환, 이종덕, 전규동 등이 제생인 맹아부를 일본으로부터 인수 받아 교명도 국립 맹아학교도 개칭하였으며 미군 청정 보건후생부 관할 아래에 두었다.

 학제도 초등부 6년제로 개편되었으며 초대 교장엔 한글지문자 창안자 윤백원이 취임(1946. 10. 1∼1947. 11 6)하여 1946년 9일 1일 드디어 오늘날까지 모든 농아인에게 없어서는 안되는 '한글지문자'를 창안 반포함으로 농아교육에 획기적인 개혁의 길을 트이게 되었다 윤백원 교장선생님은 개인적 사정에 본교를 사임하시고 일반 학교로 전근함에 따라 그 분의 후임으로 제 2대 교장 전영택 선생이 본교 교장으로 부임되어 오셨는데 이 분은 문인인 동시에 기독교 목사이기도 한다. 전영택 교장은 문인답게 본교에 교가(校歌)가 없음을 아시고 취임하사 마자 곧 교가를 작사하였다. "북악산 솟아 있고 인왕 반석 위에 강산의 정기받아 세워진 우리 학교-"1∼3절까지 지어 부르게 하여 학교이름을 빛내 주었다. (현재 맹학교 교가로 존속)

 1947년 9월 1일 중등부 3년제를 신설, 교과 과목과 직업(제복,목공예)교육도 병행하여 차차 교육의 내실을 다듬어 갔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본교 관할이 보건사회부로부터 문교부로 이관되었고 동년 10월에는 1937넌 7월에 처음 우리나라출 방문,본교를 시찰하고 가신 헬렌켈러 여사가 전후 전상자들을 위해 세계 각국을 순방하는 길에 일본을 거쳐 본교를 두 번째로 방문됐는데 불행하게도 당시 여수내란사건으로 국내 치안이 극히 불안하여 오시다가 되돌아가는 아쉬움을 남겼다.

 이런 와중에 전영택교장은 사임하고 3대 장인환 선생이 1950년 1월 7일에 취임하였나. 장인환교장은 정직하고 실천력이 뛰어나며 신념에 찬 교육자로서 경영에 있어서 불리한 점을 단호히 시정하고 밖으로 서울, 수원, 인천. 대전 등지에 있는 일반학교를 순회하면서 농교육에 대한 계몽을 열심히 펴는 한편, 재정적으로 어려운 현실을 타개하는데에도 전력을 다 하였을뿐 아니라 중등과를 졸업하는 졸업생들의 취업을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하여 실습교육을 강화하여 시,청각장애인들에 큰 기대를 안겨 주었으나 6.25 공산군의 남침으로 안타까게 정인환교장은 납북되어 오늘까지 생사불명이 되는 비극을 맞아야 했다.

 6.25동란 중에 일반학교가 다 그러하듯이 본교도 휴교상태, 9월 28일 서울이 수복되어 다시 학생들이 귀교, 어수선한 가운데 학교 수업을 받기도 전에 중공군의 남침(1.4후퇴) 으로 피난길에 막힌 기숙생중심의 학생틀은 최병문, 신재록, 김화자 교사들의 인솔하에 제주도로 옮겨갔으나 거기서도 재정난 수업은 염두도 못내고 학생들이 신문팔이를 하면서 학교 재정을 해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부가 1953년 8월 24일 서울로 환도할 때까지 본교는 제주도에서 1951년 9월 1일 부산 대신동에 가교로 옮겨 수업하다가 같은 달에 다시 부산 송도로 학교를 옮기게 되었다. 필자를 비롯 피난 중에 최초로 초등부와 중등부 졸업생을 배출하였으나 교명 서울맹아학교로 개명하였다. (1952년 6월)  피난 정부가 부산에서 서울로 환도되어 본교도 신교동 옛터에 옮겨 과도기적 시기를 넘겨 차차 학교다운 학교로 정리되어 가던 중 1954년 4월 16일 해방 후 초대 본교교장으로 활약하였던 윤백원 선생이 제5대 교장으로 다시 취임하여 오셨으나 두 달만에 사임하고 일반학교로 가시고 밀았다. 이 때 특기할 일은 1954년 4월 1일 3년제 사범과와 1년제 보통사범과를 신설하여 농아 교육 지도자 양성에 박차를 가하여 1957년 4월 5일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2명의 농아인 교사가 탄생, 주신기 교사와 김인숙 교사가 서울 본교와 수원 서광학교 일선 교단에 서서 현재까지 후진 양성에 헌신 봉사하고 있다.




[원문 출처] (김기범,“본교 80년 회고록”,서울선희학교 동창회, 선희지, pp. 232- pp.235, 19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