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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년 역사 < 1959 ~ 1988
1954년 9월 9일 본교 제 6대

국립서울농아학교 시대

  1954년 9월 9일 본교 제 6대(1954. 9 9.∼ 1966. 7.14)교장으로 취임한 이종덕 선생은 우리나라 최초의 맹인교장인데 교육과 사회 발전을 위하여 헌신하였으며 농아부와 맹부 양측의 혁신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맹, 농 양부의 분리가 불가피하다는 필요성을 절감하여 1956년 6원 28일 맹, 농교육 분리 준비위원회를 구성 발족하여 활동하다 마침내 1959년 4월 1일 농, 맹교육 분리에 관한 대통령령에 의해 1959년 4월 1일 문교부 지시에 따라 서울농아학교와 서울맹학교로 분리되어 농아 교육의 새로운 전기(轉機)를 마련해 놓았다.

  1960년 9월 9일 제2공화국 탄생과 더불어 윤보선대통령이 일국의 국가 원수로 개교이래 최초로 본교를 시찰하여 농교육의 현 주소를 파악하면서 농아 학생들과 교직원들을 격려하면서 앞으로의 농교육의 발전과 개발을 위해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겠다고 약속하고 돌아 갔으나 얼마 못 가서 5.16을 맞아 모든 희망이 무산되는 안타까움을 씹어야 했다. 이런 사회 변동과 국가적인 변란 속에서 1959년 4원 1일부터 1964년 7원 4일까지 5년간에 (이창선, 정동석, 김기용, 길의순, 홍웅선) 5명의 학교장이 교체되는 과도기적 현상으로 학교 운영을 이어 가야 하였다.

  1964년 1월 1일 3년제 고등부를 신설하고 사범과와 보통사범과(사범과는 1965학년도까지 존속)는 폐지되어 많은 농아인에게 중등교육의 기회를 확대부여하여 농교육의 문호를 개방하였다.  제13대 교장으로 취임한 이철환 교장(1964. 7. 5∼1978. 2. 28)은 보다 합리적이고 능률적인 농아 교육의 환경을 개선하기 위하여 교내에 무질서하게 설치되어 있는 사택과 기타 불필요한 불량 건물들을 일제히 철거하고 운동장을 확장하여 학교다운 기반 을 닦아냈다. 이로써 이철환 교장 임기동안 다음과 같이 교사 및 부속실을 설치하였다.


        o 1964년 7월 30일 도서관 및 과학실험실, 시청각 교실 준공

        o 1968년 9월 15일 강당준공

        o 1969년 9월 20일 후관, 신관 교실(5교실) ,가사실, 음악실, 미술실 준공

        o 1971년 9월 30일 기숙사 신관 준공

        o 1977년 12길 18일 기숙사식당개축

  제14대 정택영 교장은(1978. 3. 1∼1984. 8. 31) 본교에 평교사로 부임하여 교감, 교장에 이르기까지 다년간 재직하면서 농교육의 실체를 체득, 현실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구화 중심 교육에서 수화와 구화를 병용한 토탈 커뮤니케이션 교육 방법으로 전환, 농아인의 언어생활의 중심이 되는 수화 교육 방법을 도입하고 개선하였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수화 교육의 필요성을 느낀 나머지 1982년 8월 금옥재단의 후원을 받아 본교 출신 농아 교사(주신기, 김기범), 다년간 농교육에 상당한 경험을 쌓아온 건청인 교사(이선호, 김진. 김삼찬)가 중심이 되어 3년간 고심 노력 팥에 약 8,000단어가 수록된 1.400면의 우리나라 최초의 '표준수화사전'을 편찬 발행함으로써 수화 교육과 보급에 일대 혁신을 이루는 데 기반을 다지게 되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리고 1972년 여름. 1959닌 4원 1일 농아학교와 맹학교가 분리된 이후 본교의 어울리는 내용의 교가가 없어 골몰한 칸에 딩시 본교 교감으로 재직하고 있던 이완석 교감이 오늘까지 우리가 즐겨 부르고 있는 새 교가가 「흰구름 감도는 인왕산 바라보며 ··· ··· 말 배우고 기술익혀 새 삶을 이룩하세」를 작사하였고 이홍선 선생이 작곡하여 본교 이름은 빛냈다.

  제14대 정택영 교장의 재임 기간 동안 실적은 다음과 같다.
1980년 4월 2일 농아 교육은 조기교육에서 출발하여야 실질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확신으로 조기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한 나머지 유치부 1학급을 신설하여 다음 해엔 2학급을 증설하며 농교육의 기초부터 다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1982넌 7월 10일에 졸업 후 자립 생활과 사회 진출을 위해 종전까지 제복, 목공, 양재, 제화 분야의 실습 교육을 확대, 산업미술, 산업공예, 요업, 양재. 자수, 편물 등 다방면의 기능을 배양하기 위하여 실습과목을 다양화했으며 이글 위하여 직업보도관을 신축하고 이전하였다 또한 요육실도 2실 신설하였으떤 남. 여 기숙사 건물도 개축하였다. 이로써 본교는 국가의 재정적 지원을 받아 우수하고 유능한 교사를 확보, 기초적인 교육환경을 다듬어 갔다



[원문 출처] (김기범,“본교 80년 회고록”,서울선희학교 동창회, 선희지, pp. 232- pp.235, 1993)